내 애인은 백설공주 내 애인은 하나 그니까 바보 등신이다. 삼 년째 샌님 같은 남선생을 좋아한 그 애는. 내 애인은. 내 애인 하나는 바보 등신. 졸업하고서 그렇게 잘 쓰던 편지 한 통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우리 하나는. 어쩜 이리 영악하고 멍청할까. 칠 년 봤지만 모르겠어 난. 사실 먼저 떠난 건 나였지만. 버린 건 나지만 어째서 버림받은 기분인지 매...
어딘가 쎄한 애지. 까무잡잡하고, 뜯어보면 오밀조밀 동그란데 이상하게 쎄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흘 째 보니 알겠더라. 눈깔이 허하더라고. 그래서 불행한 애인가 싶었는데 일주일 보니 또 아니야. 웃기도 잘 웃고 애교도 잘 떨어. 목소리도 유별나게 튀어서 숨소리만 들어도 아 걔네, 싶어. 자리 바꿨어. 맨 뒷자리라서 좋다고 웃으면서 나 보는데 사람이 그렇게...
도시는 넓어요. 넓어서 어쩌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 근데요 선생님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졸업하려면 아직 일 년이나 남았어요. 졸업식에는 굳이 안 오셔도 돼요. 그냥 백합과 선생님 사진 한 장만 보내주세요. 차마 액자에 끼워두는 건 못하겠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잊어버릴게요. 기억을 도려내서 가위질로 망쳐버릴게요. 선생님과 이제 평생을 함께...
아메리카노 한 잔이 참 가볍더라. 치열했던 내 과거에 너는 없고 날개 없어도 연필은 여전히 굴려 네 얼굴 까먹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막막해 눈썹이 길었던 것도 같고 콧볼은 작았나? 눈은 순했던 것도 같아 나랑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아니고. 아직도 담배 태우니? 맞담배 핀지도 벌써 오래 됐다 겨울에는 손이 시려워서 담배 하나 태우는 것도 ...
겨우 몇글자로 내리는 관계 정의 제일 길다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그런데 네가 제일 길다 선생님을 외사랑하는 애인을 사랑하는 친구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데 모두 들어간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나 너도 사랑해 이제서야 고백해 콱 죽어버릴 거야 너 떠나면 영영 눈을 못 뜰 거야 그러니까 가지마 부탁할게 웃기지마 진실로 날 사랑한다면 그냥 버려줘 가서도 ...
고개 들어 세상은 그렇게 낭만 있지 않단다
새카만 방구석이 지긋지긋하니 싫어서 벗어날까 했더니 카페에 커피 사먹을 돈도 없어서 다시 침대 위만 유영했어 한평생 정처 없이 걷기엔 빌어먹게 배가 고팠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결국 있을 곳은 다섯 개의 꿈 속이었어 울지 좀 마 미안해 나도 방금 알았어 내가 우는지 들키기 싫어서 등 돌리고 숟가락질 해 훌쩍이면 우냐고 물어볼까 봐 한 번 훌쩍이고 무의...
형 제가 연락하지 말랬죠 저 이제 형 안 좋아해요 내내 말했잖아요 추운데 가로등 밑에서 서성이지 말고 집 앞이라고 문자도 하지 말고 목소리도 안 듣고 싶으니까 전화도 하지 마세요 이제 다 지난 일이에요 왜 그렇게 미련을 못 버려요 제가 좋아한다고 쫓아다닐 때는 싫다 그리 밀어내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세요 저 가슴 아프게 형 형 저는요 그 오년 동안 저리고 ...
눈깔이 죽어있었다 언제나 희고 붉던 그 아이의 어린 얼굴에 새카만 눈깔이 죽어있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오늘은 좋은 날. 죽는 날 비석에 새길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날 들리는 음악은 끔찍하게 사랑스러웠다 흰 한 걸음 한 걸음이 가볍고도 무거워 두 걸음을 딛고 멈춰섰지만. 얘 왜 울고 그래 좋은 날이잖니 다 알면서도 이렇게 굴었다 선생님, 억장이 무너지는 목소...
다음 생엔 눈에 단추를 매달고 태어나겠다 선생님은 못 보겠지만 동정은 받을 거다 세상을 두 번은 보지 않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듣겠다 아버지가 내 아들로 태어나길 빌겠다 근데요 사실은요 눈알을 뽑든 귀를 막든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저는 천국에 가면 빌고 빌어 백합이 될 거예요 백합이 되어서 선생님과 함께 매장될 거예요 그땐 봐...
눈이 너무 아파서 뽑을 뻔했다 사실 눈 같은 거 없는데 없는 눈을 만들어 또 뽑을 뻔했다 또, 라는 건 몇 번이고 될 수 있지. 두번째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야 너. 수도 없이, 수도 없이 어제는 가렵고 오늘은 아프고 내일은 저릿하고 모레는 가려울 아버지, 제 눈깔 팔고서 얼마나 받으셨어요? 돈을 받긴 했어요? 또 담배나 뻐금대셨나요? 전 하루 아침에 세...
난 네 생일도 몰라. 그러니까 그만큼 너는 내게 큰 사람이 아니었고 가치가 없었고 사실은 잊은 거지만 곧 너도 서서히 잊어갈 거야 줄어드는 보름달처럼 그렇게 서서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초승달만큼 홀쭉 남겨두는 건 그래도 네게 미안한 것들이 머릿속 깊이 박혀서,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해서 첫사랑은 아니었는데 첫사랑만큼 강렬했던 너는 역시 첫사랑이었을까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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